광주군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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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군(廣州郡)은 경기도 중부에 위치하는 광주시의 이전 행정구역이다. 현 광주광역시의 전신인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과 한글 표기는 같지만 한자는 다르다. 예로부터 서울 동남부의 관문으로 알려진 곳이었으며, 2001년 군 전역이 도농복합도시 광주시로 승격하였다.[1] 현재의 광주시 외에도 성남시, 하남시 및 서울특별시 강남구, 강동구 전역과 잠실동과 신천동을 제외한 송파구 전역, 서초구의 내곡동, 신원동, 염곡동 지역은 이 군에 속해 있다가 분리되거나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었다.
역사편집
삼국 시대 ~ 통일 신라 시대
본래 백제의 남한산성이다. 기원전 6년(백제 온조왕 13년) 위례성(현 서울 강북)에서 지금의 서울 송파구, 강동구 일대에 도읍을 옮기고 『한성(漢城)』이라 불렀다. 이후, 370년(근초고왕(近肖古王) 25년)까지 376년간 백제의 도읍지였다. 371년(근초고왕(近肖古王) 26년)에는 다시 도읍을 남평양성으로 옮겼다. 고구려 장수왕이 475년에 남하하여 한산성을 함락하고 북한산군을 설치하였다. 551년 백제 성왕이 신라와 연합군을 결성, 한산성을 탈환하였고, 553년 신라 진흥왕이 한산성을 빼앗아 신주를 설치하였고, 557년 (진흥왕 18)에 신주를 폐하고 북한산주를 설치하였으며, 다시 568년(진흥왕 29)에 북한산주를 폐지하고 남천주를 설치하였다. 604년(진평왕 26)에 남천주를 폐하고 북한산주를 설치하였다. 660년 백제가 신라에 패망할 시기에 남한산성을 고쳐 한산주라 하고, 또 남한산주라고도 불렀다. 662년(문무왕 2) 남천주가 설치되고, 664년 한산주로 개칭되고, 766년(경덕왕 15)에 시행된 한화정책에 따라 한주(漢州)로 개명되었다.
고려 시대
940년(고려 태조 23년) 지금의 명칭인 광주(廣州)로 개칭되었고, 983년(고려 성종 2년) 처음으로 12목(牧)을 두었는데 이 때, 광주목(廣州牧)을 두었다. 995년(고려 성종 14년)에 절도사를 두어 봉국군(奉國軍)이라 이름하고 관내도(關內道)에 예속시켰다. 1012년 (고려 현종) 3년에 폐하여 안무사가 되었다가 1018년(고려 현종 9년)에 8목(牧)을 정할 때에 다시 목이 되었다. [2]이때, 양광도에 예속되고 안무사를 설치하였다.
조선 시대
조선 세조 때 진(鎭)을 두었다. 명종 14년(1559년)에 목사가 파견되었고 1577년 (조선 선조 10년) 광주부(廣州府)로 승격하고 경안, 오포, 도척, 실촌, 초월, 퇴촌, 초부, 동부, 서부, 구천, 중대, 세촌, 돌마, 낙생, 대왕, 언주, 왕륜면(旺倫面), 일용, 월곡, 북방, 송동, 성관, 의곡면(儀谷面) (도합 23개면)을 관할하였다. 1626년(인조 4년) 남한산성이 축성되었다.
광주목의 행정
1530년 이전에 광주목은 여주목, 이천도호부, 양근군, 지평현, 음죽현, 양지현, 죽산현, 과주현을 관할하였다. [3]행정 관리는 목사 1인(종 3품), 판관(判官) 1인(종 5품), 교수(敎授) 1인(종 6품)을 두었다.[4]
●1883년 음력 3월 17일 박영효는 광주부(廣州府) 유수로 발령을 받았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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