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3일 목요일
우리나라의 항공의 역사우리 나라에도 일찍이 날틀을 만들어 하늘을 날은 사람이 있었다. 약 150년 전 조선 현종 시대의 고증 학자 이 규경 선생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 란 책에 “비차변증설“ 이란 대목이 있다. 여기서 비차란 날틀을 말하는 것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원주에 사는 정평구 선생이 따오기(새)모양을 한 비차를 만들어 날개로 배를치며 바람을 일으켜 공중에 떠올라 백 척을 능히 날 수 있었다. 그러나 맞바람(양각풍)이 불면 앞으로 날아갈 수가 없으며 회오리 바람(광풍)이 불 때는 날지 못하고 떨어진다”.정평구에 대한 기록은 또 있는데 그것은 정평구가 바람을 타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수레인 비거를 만들어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이것으로 외부와 연락을 하고 또한 영남의 어느 고성에 갇혀 있던 성주를 30리 밖으로 탈출시켰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기록이 없어 형태나 구조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또 호서 지방의 노성에 사는 윤달규 선생도 비차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시대는 새의 날개를 이용한 날개치기 비행기가 연구되던 때인데 우리나라에도 이런 연구가 있었다는 점은 자랑스러운 일이나 유감스럽게도 자료가 부족하고 남아 있지 않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한국이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이 있다. 안창남은 1921년 면허를 취득하고 22년 12월 뉴포트 15형 영국 육군기(80마력 엔진의 1인승 단발 겹날개 비행기)<금강호> 로 여의도비행장에서 고국방문비행을 하였다. 26년 이기인이 최초로 경성항공사업사를 설립했으나. 다음해 비행사고로 사망하여 무산되었다. 30년 신용욱이 “조선 비행학교”를 설립하였고 또 36년 조선 항공사업사를 설립하여 서울과 이리 광주간을 운항하였다.44년 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부산. 신용욱과 일본육군 합작)와 조선 비행기 공업주식회사가 설립되었으나 광복으로 곧 폐쇄되었다. 광복 후 한국 공군은 49년 미군으로부터 10대의 L-4연락기를 인수해 최초의 군용항공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6.25가 일어나자 공군은 50년 7월 미공군으로부터 F-51전투기 10대를 인수해 사용했고. 54년 3월 폐기 항공기 부품을 활용하여 <부활호>라는 경비행기를 제작했으나 실용화되지 못했다. 55년 6월 이후 F-86F전투기 F-33제트 연습기. F-4D 팬텀 전투기 C-123 항공기드을 외국으로부터 도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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