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6일 목요일

한진 * 사용등료등 * 강제정산집행강제회수집행 * 20131226 1341 * NM * * 한진등 등 * 해외등 등 * 강제회수집행 * 자동등* * NM * 20131226 1342 * * 한진 * 대한항공 * 귀책등 * 사용등료등 * 강제회수집행 * 20131226 1342 * NM * * 퇴역 * 주문생산 * 개량 * 신규 * 불법개조 * 귀책등 * 강제회수집행 * FTA * 공개공시통보자동등 * 20131226 1430 * NM * * 신규도입항공기 * 소유주 사유자산 * FTA * 공개공시통보자동등 * 20131226 1336 * NM * * S oil 3000만주 * 비행기 매각 * 귀책등 * 강제정산강제회수집행 * 20131226 1334 * NM * * Korea National Airline * 대한항공공사 * 1969년 주식회사 * 대한항공 KAL * 사용등료등 * 강제정산집행강제회수집행 * 20131226 1331 * NM * * ●대한항공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ko.m.wikipedia.org/wiki/%EB%8C%80%ED%95%9C%ED%95%AD%EA%B3%B5 1929년에 신용욱이 조선비행학교를 설립함으로써 태동하였다. 이후 조선비행학교는 1936년 10월에 조선항공사업사로 바꾸면서 정기운항을 시작하였다. 해방 이후 조선항공사업사는 미군정의 허가를 받아 1946년 3월1일  ●대한국민항공사(영어: Korea National Airlines) (1948년 10월까지는 대한국제항공사) 로 이름을 바꾸고 영업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수요급감과 환율상승으로 인한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1962년 대한민국 정부가 출자하여 대한국민항공사를 인수함으로써 대한항공공사(大韓航空公社)를 설립하였다.  ●1969년 2월 28일에 한진이 이를 정부로부터 불하받아 주식회사가 되었으며 불하 당시 대한항공공사는 제트기로는 DC-9기 1대, 프로펠러기로는 당시로서는 노쇠한 DC-3기 2대, DC-4기 1대, F-27기 2대, FC-27 2대로 총 8대를 보유하고 있었다[1]. 민영화 초기, 노쇠기 폐기 계획과 전 노선 제트화를 목적으로 프로펠러기를 모두 처분하려 했으나 노령기였던 DC-3, 4기와 FC-27기만 폐기처분 되었고, F-27기는 오히려 3대 더 구입하여 국내선에 투입하였다[2]. 또한 국내선과 단거리용으로 YS-11기를 도입하여[2] 1976년까지 사용하였다. 성장기 대한항공의 보잉 747-4001969년에 대한항공은 보잉 720 항공기를 도입하여[2] 인근 국제선 노선에 투입, 제트기 시대를 열었다. 보잉 720항공기는 1970년까지 대한항공의 유일한 제트기로서 역할을 해냈다. 같은 해 최초로 국제선 노선을 취항하였다. 또한 이 기간 동안에 대한항공은 3대의 보잉 707 화물기를 도입해 수익 창출을 다각화 하였다. 1971년에는 보잉 707을 도입함으로써[3], 1972년까지 보잉 727 항공기와 단 1대의 보잉 707 항공기로 노선 전역을 커버하였다. 1971년 3월 26일에는 새로운 항공협정을 통해 호놀룰루와 로스앤젤레스의 취항권을 획득하였고 이 노선은 현재까지도 대한항공의 주력노선으로 운항하고 있으며, 편명대는 KE0** 번대로 운항한다. 이 노선의 효과적 운용을 위해 당시 사장이었던 조중훈은 보잉 747을 도입하기로 결정해 1972년 10월 18일에 보잉 747-2B5(B5는 대한항공에서 도입하는 보잉사의 항공기의 고객코드이다.)의 도입을 확정 지었다. 그리고 1973년 5월 2일에 보잉 747-2B5B(HL7410) 융비호 항공기를 도입했다[4]. 초기 미주 노선은 서울 ~ 도쿄 ~ 호놀룰루 ~ 로스앤젤레스를 거쳐야 하는 장거리 노선이며 비행 시간은 17시간이었다. 논스톱 직항편은 그로부터 몇 년 후에 신설 했으나 보유 기종의 항속거리 미달과 항공 협정의 불리한 조항 때문에 논스톱 직항편 신설이 지연 되었다. 그 시절에는 중동으로 향하는 노선들이 많이 있었는데 국제 정서상 모두 중국, 베트남을 우회해서 통과하였다. 미주 노선도 마찬가지로 국제 정서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 소비에트 연방 (소련) 영공을 통과하지 못하고 일본 센다이 쪽으로 우회해서 가야 했다. 다만, 특이한 항로도 있었는데, 김포국제공항에서 태국 돈므앙 국제공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킹 압둘아지즈 국제공항을 경유하여 스위스의 취리히 공항을 연결하는 항로였다.미주 노선이 안정화가 되면서 대한항공은 유럽노선 개척에 힘을 썼다. 이를 위해 에어버스 A300 항공기(1975년 8월 8일, HL7218 임차도입)를 유럽 이외 지역에서 최초로 주문 했으며[5] 적극적인 영업 활동을 하면서 화물 노선에 취항 후 여객 노선에 취항하였다. 당시에는 국제 정서상 소비에트 연방 영공을 통과하지 못해 알래스카 주의 테드 스티븐스 앵커리지 국제공항을 경유한 뒤 북극을 통해 영국, 프랑스 등을 연결하였다. 앵커리지로 가는 항공편마저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소비에트 연방영공을 우회하기 위해 일본 도호쿠 지방 (야마가타 현, 미야기 현) 쪽으로 돌아서 갔다. 조중훈 전 회장은 훗날 이 노력으로 프랑스 정부에서 훈장을 받았다[6]. 보잉 707화물기와 맥도넬 더글라스 DC-10 여객기로 파리까지 가는 유럽 항로를 운항하기 시작하였다. 1978년 5월 22일에 도쿄 도착편의 KE701편이 나리타 국제공항에 첫 착륙하는 이색적인 기록도 세웠다. 1985년에 보잉 747SP항공기 편성을 시작으로 나리타 국제공항에 가는 정규 노선이 신설되었다. 중반기 1980년 초에 새 항공기 CI를 위한 공모를 하였으나 적절한 작품을 찾지 못한 뒤 보잉사와 공동으로 작업한 하늘색 바탕의 은색띠 그리고 볼드체의 영문 KOREAN AIR와 한국의 전통 태극무늬와 추진적인 프로펠러 이미지를 합친 새 CI를 구상하였다. 새로운 CI는 한글과 한자로 된 부분이 현저하게 줄었는데, 이는 대한항공의 인지도 상승을 위함이었다. 이 새로운 CI는 1984년 3월 1일에 적용되었다. 이 새로운 CI는 같은 년도에 도입된 포커 28 항공기와 보잉 747-300B(HL7468,HL7469,HL7470)부터 적용되어 점차 확대적용 되었다. 이 CI는 1990년대에 아주 작은 변화가 있었으며 기체 기수에 한글 '대한항공'의 변화이다. 초기 CI에서는 기울임꼴로 처리되어 있었지만1990년대에 도입되거나 새로이 도장된 기체에는 기울임꼴이 아닌 일반체로 되어 있다. 이로써, 구 CI와 신 CI의 유일했던 공통점이 사라지게 되었다. 새로운 도장은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쓰이고 있다.1991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 몽골, 소비에트 연방에 취항하기 시작하였고 1992년에는 남아메리카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노선인 브라질 상파울루행 노선이 신설되었으나 2001년 중단한 뒤 2009년에 재취항 했으며 이 노선이 앵글로아메리카를 거치는 유일한 노선이다. 현대 역사 대한항공이 프랑스 에어쇼에서 CS300기를 주문하기로 하였다.1987년 2월 27일에 맥도넬더글러스 DC-10 항공기를 대체하기 위해 맥도넬더글러스 MD-11의 계약을 체결하였다[7]. 그러나 맥도넬더글러스 MD-11의 계약성능 미달 문제와 보잉과 맥도넬더글러스의 합병으로 이 항공기의 유지비가 오를 것으로 전망되어 2003년에 전량 퇴역했다. 퇴역하기 직전에 이 기종은 대부분 화물기로 운항했다. 또한 맥도넬더글러스 MD-11은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가 있었는데 그 중 2개가 1998년에 서울에서 도쿄로 가던 비행기가 제주에서 기상 약화로 인해 회항하면서 이탈하는 사고와 2002년에 시드니 공항에서 콴타스 항공 소속 지상조업자의 부주의로 일어난 사고가 있었다.[8] 그 밖에도 밀라노와 상하이 근방에서 일어난 사고로 사고 원인은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실속으로 추락한 사고였다[8].1997년부터 보잉 777과 에어버스 A330을 도입하기 시작해 맥도넬더글러스 MD-11의 공백으로 생긴 200석에서 300석 규모의 장거리 기체를 보완하기 시작했다.[9][10]2000년에 스카이팀에 가입하였으며 [4] 보잉 777이 도입 되면서 구형 보잉 747-400 여객기는 화물기로 개조중이며[11] 비교적 신형의 보잉 747-400 기종은 단계적으로 기내 업그레이드를 실시하고 있다.2007년에 저가 항공사가 늘어 나면서 저가 항공사를 설립하기로 하였으며 이름은 진에어로 확정되어[12] 현재 11개 도시에 운영중이며, 2010년에 블리자드게임 회사와 협력 하면서 보잉 747-400기와 보잉 737-900기에 스타크래프트 2 CI를 적용했다.[13]에어버스 A380-800, 보잉 787-9, 보잉 747-8I, 보잉 777-300ER, 봄바디어 C300를 도입을 하고있다. 특히 에어버스 A380-800는 첫 운행 당시(HL7611) 인천국제공항발 나리타 국제공항 노선에 투입되어 예약률이 92%로 도달했으며[14]봄바디어 C300 항공기 경우 캐나다산 보잉 737과 같은 비행기로 프랑스 에어쇼에서 20대 옵션 10대를 주문 하기로 결정됐다.[15]최근들어 뉴 앤터테이먼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AVOD를 장착한 보잉 737-900ER을 2대 신규 도입했다. 새로 도입할 보잉 737-900ER 4대와 보잉 737-800 10대에 AVOD를 장착하여 도입할 계획이다.[16]2011년에 봄바디어 C300을 10대 주문하였다. 같은 해 페루 리마로 가는 부정기편을 운항해 브라질 이외의 남미 국가를 운항하는 최초의 항공기가 되었다. 또 2012년에 동북 아시아 최초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논스톱 직항편을 신설하였고[17], 11월부터는 15년만에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정기 여객편을 투입한다[18].2013년 12월 19일 대한항공은 재무구조개선을 위해 현재 800%에 달하는 부채율을 400%대까지 줄이기 위해 S-oil지분 3000만주를 매각하고 연비효율이 좋지않은 B747-400, B777-200 항공기 15대를 매각하기로 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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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 * 사용등료등 * 강제정산집행강제회수집행 * 20131226 1341 * NM * *

한진등 등 * 해외등 등 * 강제회수집행 * 자동등* * NM * 20131226 1342 * *

한진 * 대한항공 * 귀책등 * 사용등료등 * 강제회수집행 * 20131226 1342 * NM * *

퇴역 *
주문생산 *
개량 *
신규 *
불법개조 *
귀책등 * 강제회수집행 * FTA * 공개공시통보자동등 * 20131226 1430 * NM * *

신규도입항공기 * 소유주 사유자산 * FTA * 공개공시통보자동등 * 20131226 1336 * NM * *

S oil 3000만주 *
비행기 매각 *
귀책등 * 강제정산강제회수집행 * 20131226 1334 * NM * *

Korea National Airline *
대한항공공사 *
1969년 주식회사 * 대한항공 KAL * 사용등료등 * 강제정산집행강제회수집행 * 20131226 1331 * NM * *

●대한항공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ko.m.wikipedia.org/wiki/%EB%8C%80%ED%95%9C%ED%95%AD%EA%B3%B5

1929년에 신용욱이 조선비행학교를 설립함으로써 태동하였다. 이후 조선비행학교는 1936년 10월에 조선항공사업사로 바꾸면서 정기운항을 시작하였다. 해방 이후 조선항공사업사는 미군정의 허가를 받아 1946년 3월1일 
●대한국민항공사(영어: Korea National Airlines)
(1948년 10월까지는 대한국제항공사)
로 이름을 바꾸고 영업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수요급감과 환율상승으로 인한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1962년 대한민국 정부가 출자하여 대한국민항공사를 인수함으로써
대한항공공사(大韓航空公社)를 설립하였다. 

●1969년 2월 28일에 한진이 이를 정부로부터 불하받아 주식회사가 되었으며 불하 당시 대한항공공사는 제트기로는 DC-9기 1대, 프로펠러기로는 당시로서는 노쇠한 DC-3기 2대, DC-4기 1대, F-27기 2대, FC-27 2대로 총 8대를 보유하고 있었다[1]. 민영화 초기, 노쇠기 폐기 계획과 전 노선 제트화를 목적으로 프로펠러기를 모두 처분하려 했으나 노령기였던 DC-3, 4기와 FC-27기만 폐기처분 되었고, F-27기는 오히려 3대 더 구입하여 국내선에 투입하였다[2]. 또한 국내선과 단거리용으로 YS-11기를 도입하여[2] 1976년까지 사용하였다.

성장기

대한항공의 보잉 747-4001969년에 대한항공은 보잉 720 항공기를 도입하여[2] 인근 국제선 노선에 투입, 제트기 시대를 열었다. 보잉 720항공기는 1970년까지 대한항공의 유일한 제트기로서 역할을 해냈다. 같은 해 최초로 국제선 노선을 취항하였다. 또한 이 기간 동안에 대한항공은 3대의 보잉 707 화물기를 도입해 수익 창출을 다각화 하였다. 1971년에는 보잉 707을 도입함으로써[3], 1972년까지 보잉 727 항공기와 단 1대의 보잉 707 항공기로 노선 전역을 커버하였다. 1971년 3월 26일에는 새로운 항공협정을 통해 호놀룰루와 로스앤젤레스의 취항권을 획득하였고 이 노선은 현재까지도 대한항공의 주력노선으로 운항하고 있으며, 편명대는 KE0** 번대로 운항한다. 이 노선의 효과적 운용을 위해 당시 사장이었던 조중훈은 보잉 747을 도입하기로 결정해 1972년 10월 18일에 보잉 747-2B5(B5는 대한항공에서 도입하는 보잉사의 항공기의 고객코드이다.)의 도입을 확정 지었다. 그리고 1973년 5월 2일에 보잉 747-2B5B(HL7410) 융비호 항공기를 도입했다[4]. 초기 미주 노선은 서울 ~ 도쿄 ~ 호놀룰루 ~ 로스앤젤레스를 거쳐야 하는 장거리 노선이며 비행 시간은 17시간이었다. 논스톱 직항편은 그로부터 몇 년 후에 신설 했으나 보유 기종의 항속거리 미달과 항공 협정의 불리한 조항 때문에 논스톱 직항편 신설이 지연 되었다. 그 시절에는 중동으로 향하는 노선들이 많이 있었는데 국제 정서상 모두 중국, 베트남을 우회해서 통과하였다. 미주 노선도 마찬가지로 국제 정서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 소비에트 연방 (소련) 영공을 통과하지 못하고 일본 센다이 쪽으로 우회해서 가야 했다. 다만, 특이한 항로도 있었는데, 김포국제공항에서 태국 돈므앙 국제공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킹 압둘아지즈 국제공항을 경유하여 스위스의 취리히 공항을 연결하는 항로였다.미주 노선이 안정화가 되면서 대한항공은 유럽노선 개척에 힘을 썼다. 이를 위해 에어버스 A300 항공기(1975년 8월 8일, HL7218 임차도입)를 유럽 이외 지역에서 최초로 주문 했으며[5] 적극적인 영업 활동을 하면서 화물 노선에 취항 후 여객 노선에 취항하였다. 당시에는 국제 정서상 소비에트 연방 영공을 통과하지 못해 알래스카 주의 테드 스티븐스 앵커리지 국제공항을 경유한 뒤 북극을 통해 영국, 프랑스 등을 연결하였다. 앵커리지로 가는 항공편마저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소비에트 연방영공을 우회하기 위해 일본 도호쿠 지방 (야마가타 현, 미야기 현) 쪽으로 돌아서 갔다. 조중훈 전 회장은 훗날 이 노력으로 프랑스 정부에서 훈장을 받았다[6]. 보잉 707화물기와 맥도넬 더글라스 DC-10 여객기로 파리까지 가는 유럽 항로를 운항하기 시작하였다. 1978년 5월 22일에 도쿄 도착편의 KE701편이 나리타 국제공항에 첫 착륙하는 이색적인 기록도 세웠다. 1985년에 보잉 747SP항공기 편성을 시작으로 나리타 국제공항에 가는 정규 노선이 신설되었다.

중반기

1980년 초에 새 항공기 CI를 위한 공모를 하였으나 적절한 작품을 찾지 못한 뒤 보잉사와 공동으로 작업한 하늘색 바탕의 은색띠 그리고 볼드체의 영문 KOREAN AIR와 한국의 전통 태극무늬와 추진적인 프로펠러 이미지를 합친 새 CI를 구상하였다. 새로운 CI는 한글과 한자로 된 부분이 현저하게 줄었는데, 이는 대한항공의 인지도 상승을 위함이었다. 이 새로운 CI는 1984년 3월 1일에 적용되었다. 이 새로운 CI는 같은 년도에 도입된 포커 28 항공기와 보잉 747-300B(HL7468,HL7469,HL7470)부터 적용되어 점차 확대적용 되었다. 이 CI는 1990년대에 아주 작은 변화가 있었으며 기체 기수에 한글 '대한항공'의 변화이다. 초기 CI에서는 기울임꼴로 처리되어 있었지만1990년대에 도입되거나 새로이 도장된 기체에는 기울임꼴이 아닌 일반체로 되어 있다. 이로써, 구 CI와 신 CI의 유일했던 공통점이 사라지게 되었다. 새로운 도장은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쓰이고 있다.1991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 몽골, 소비에트 연방에 취항하기 시작하였고 1992년에는 남아메리카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노선인 브라질 상파울루행 노선이 신설되었으나 2001년 중단한 뒤 2009년에 재취항 했으며 이 노선이 앵글로아메리카를 거치는 유일한 노선이다.

현대 역사

대한항공이 프랑스 에어쇼에서 CS300기를 주문하기로 하였다.1987년 2월 27일에 맥도넬더글러스 DC-10 항공기를 대체하기 위해 맥도넬더글러스 MD-11의 계약을 체결하였다[7]. 그러나 맥도넬더글러스 MD-11의 계약성능 미달 문제와 보잉과 맥도넬더글러스의 합병으로 이 항공기의 유지비가 오를 것으로 전망되어 2003년에 전량 퇴역했다. 퇴역하기 직전에 이 기종은 대부분 화물기로 운항했다. 또한 맥도넬더글러스 MD-11은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가 있었는데 그 중 2개가 1998년에 서울에서 도쿄로 가던 비행기가 제주에서 기상 약화로 인해 회항하면서 이탈하는 사고와 2002년에 시드니 공항에서 콴타스 항공 소속 지상조업자의 부주의로 일어난 사고가 있었다.[8] 그 밖에도 밀라노와 상하이 근방에서 일어난 사고로 사고 원인은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실속으로 추락한 사고였다[8].1997년부터 보잉 777과 에어버스 A330을 도입하기 시작해 맥도넬더글러스 MD-11의 공백으로 생긴 200석에서 300석 규모의 장거리 기체를 보완하기 시작했다.[9][10]2000년에 스카이팀에 가입하였으며 [4] 보잉 777이 도입 되면서 구형 보잉 747-400 여객기는 화물기로 개조중이며[11] 비교적 신형의 보잉 747-400 기종은 단계적으로 기내 업그레이드를 실시하고 있다.2007년에 저가 항공사가 늘어 나면서 저가 항공사를 설립하기로 하였으며 이름은 진에어로 확정되어[12] 현재 11개 도시에 운영중이며, 2010년에 블리자드게임 회사와 협력 하면서 보잉 747-400기와 보잉 737-900기에 스타크래프트 2 CI를 적용했다.[13]에어버스 A380-800, 보잉 787-9, 보잉 747-8I, 보잉 777-300ER, 봄바디어 C300를 도입을 하고있다. 특히 에어버스 A380-800는 첫 운행 당시(HL7611) 인천국제공항발 나리타 국제공항 노선에 투입되어 예약률이 92%로 도달했으며[14]봄바디어 C300 항공기 경우 캐나다산 보잉 737과 같은 비행기로 프랑스 에어쇼에서 20대 옵션 10대를 주문 하기로 결정됐다.[15]최근들어 뉴 앤터테이먼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AVOD를 장착한 보잉 737-900ER을 2대 신규 도입했다. 새로 도입할 보잉 737-900ER 4대와 보잉 737-800 10대에 AVOD를 장착하여 도입할 계획이다.[16]2011년에 봄바디어 C300을 10대 주문하였다. 같은 해 페루 리마로 가는 부정기편을 운항해 브라질 이외의 남미 국가를 운항하는 최초의 항공기가 되었다. 또 2012년에 동북 아시아 최초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논스톱 직항편을 신설하였고[17], 11월부터는 15년만에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정기 여객편을 투입한다[18].2013년 12월 19일 대한항공은 재무구조개선을 위해 현재 800%에 달하는 부채율을 400%대까지 줄이기 위해 S-oil지분 3000만주를 매각하고 연비효율이 좋지않은 B747-400, B777-200 항공기 15대를 매각하기로 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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