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6일 월요일

한국바로알기 - 한국의 역사 ㅡ 고구려 http://corea.moyiza.com/korea_about/571731 이처럼 고구려는 중국 세력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냈으나, 공격을 받으며 국력이 쇠퇴해갔다. 특히 연개소문 사후 지배층이 분열되어 정치 상황이 어지러웠고 민심이 혼란해져 있었다. 668년 나당연합군은 혼란해진 고구려를 공격하여 수도인 평양을 차지하고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당나라는 고구려의 옛 땅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였고, 고구려 영토의 일부는 신라로 들어갔다. 그러나 고구려의 공백은 후일 그 계승국인 발해로 이어진다.건국 [편집]고구려는 일찍이 부족 국가로 압록강 중류 동가강(佟佳江)[1] 유역을 중심으로 흥기한 예맥계통의 고구려인이 기원전 3세기경부터 부족 연맹 국가의 기틀을 다진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초기 고구려는 부여 및 한군현(漢郡縣)과의 투쟁 속에서 성장하였고, 비옥한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적극적인 정복 활동을 벌였다. 또한 이러한 과정 속에서 고구려는 왕족인 계루부(桂婁部)를 포함한 소노부(消奴部), 절노부(絶奴部), 순노부(順奴部), 관노부(灌奴部) 등 다섯 부족으로 이루어진 연맹 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1세기 초부터 이미 왕호를 제정하고 예(濊)와 한(漢)의 창해군(滄海郡)을 없애고, 기원전 75년 한의 속현인 현도군을 압록강 유역에서 몰아내는 등 부족 연맹체를 굳혔다.고구려는 이후 본격적인 고대 국가로서 건국하게 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에 따르면 기원전 37년부여계인 동명성왕(東明聖王)이 졸본(卒本)에 도읍해 나라의 이름을 고구려로 한 것이 기원이며, 《위서(魏書)》에 따르면 흘승골성(紇升骨城)에 도읍했다 한다. 그러나 이규보의 〈동명왕편(東明王篇)〉에 언급된 건국 신화 혹은 그 이후의 여러 가지 정황에 의해, 고구려는 멸망한 고조선(古朝鮮) 및 부여(夫餘) 출신의 유이민과 그 지역의 토착 세력이 결합해 이뤄진 국가로 추정되는 등, 건국연대가 더 높았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제시되기도 한다. 3년에는 국내성(國內城)으로 천도하고 위나암성(尉那巖城)을 쌓았다.

http://books.google.co.kr/books?id=1Sg7_rxpT-gC&pg=PA112&lpg=PA112&dq=%EB%8C%80%EB%8C%80%EB%A1%9C+%EB%A7%89%EB%A6%AC%EC%A7%80&source=bl&ots=OydmzmwFt6&sig=gWnKxn_IMBnJOcGoELl73aF1mTs&hl=en&sa=X&ei=1sytUtrLL4eaiAfaqoC4Dw&ved=0CCgQ6AEwAjh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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