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5일 목요일

롯데 자금출처 계좌등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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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늪이 점점 깊어지는 요즘, 재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웃고 있는 기업이 롯데그룹이다. 자금난이 심각한 다른 기업과 달리 롯데는 오랫동안 비축해온 풍부한 현금으로 기업사냥과 새 사업 진출에 나서고 있다. 군사정권도 반대해 20여년 묵혀온 제2 롯데월드 건립 사업도 이명박 정부가 일단 롯데의 손을 들어줬다. 땅부자 롯데 계열사들의 보유 토지도 각종 규제완화와 개발계획 덕에 값이 치솟고 있다. 가히 롯데에는 제2의 전성기다. 외환위기 무렵인 1998년 재계 11위(자산 기준)였던 롯데는 지금 재계 5위까지 뛰어올랐다.

롯데는 기업문화와 경영철학이 독특하기로도 유명하다. 다른 대기업들은 롯데에 대해서 늘 고개를 갸웃거린다. ‘다른 기업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국내 진출 40년에 이르지만 일본식 기업경영 시스템을 고수하는 점, 21세기 새 정부에서도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규제 완화’의 최대 수혜자가 되는 능력에 대해 궁금해하고 부러워한다.

친기업 정부서 각종 인허가 독보적 혜택
‘제2롯데월드’ 20년 묵은 체증마저 풀어

정권 바뀔때마다 ‘파워맨 영입’ 전략 구사
‘평생고용’ 충성도 높인 경영철학도 한몫

불경기 틈탄 공격적 기업쇼핑…시샘 한몸에

시장과 정부가 돕는 제2의 전성기

최근 롯데는 작정하고 쇼핑 중이다. 막대한 자금력으로 시장에 나온 매물 기업들을 닥치는 대로 쇼핑백에 집어넣는 모습이다. 경기침체라는 거대한 풍랑에 다른 기업들이 휩쓸릴 때, 물밑에서 고요히 숨죽이고 있다가 떠올라 풍랑을 즐기는 고래와도 같다.

그동안 롯데는 인수합병의 강자는 아니었다. 2006년 롯데쇼핑 상장으로 4조원가량의 실탄을 확보했지만 전투 결과는 신통찮았다. 2006년 할인점 한국까르푸 인수전에선 이랜드의 홈에버에 밀렸다. 여러 기업 인수설이 돌았지만 실현된 건 2006년 8월 우리홈쇼핑(현 롯데홈쇼핑)뿐이었다. 그전에도 2004년 해태제과, 2005년 진로에 손을 댔다가 인수에 실패했다. 기업은 아니지만 중앙대학교를 인수하러 나섰다가 두산그룹이 먼저 낚아채기도 했다.

그러던 롯데가 최근 그야말로 공격적으로 확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 2007년 12월 안에서는 대한화재(현 롯데손보·3500여억원)를, 밖에서는 중국의 대형마트 마크로 8개 점포(1600여억원)를 사들인 것이 시작이었다. 지난해 8월에는 조개모양 초콜릿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초콜릿 회사 길리안을 1700억원에, 10월엔 인도네시아의 마크로 점포 19곳을 3900억여원에 샀다. 지난해 12월 코스모투자자문을 인수한 데 이어 올 1월 소주 ‘처음처럼’을 사들이면서 롯데의 인수 공세는 절정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태세가 아니다. 오비-카스맥주 인수전에 뛰어든 데 이어, 카지노 유치와 백화점·편의점 추가 매입설이 파다하다. 이런 소문을 뒷받침하듯 롯데 계열사들은 지난 4분기에 각종 채권 발행으로 1조원 정도를 확보했고, 이달에도 롯데쇼핑이 회사채 2천억원을 추가로 발행했다.

여기에 정부의 인허가 부문에서도 롯데는 거의 두드러지게 혜택을 보고 있다. 신격호 회장이 80년대부터 꿈꿔온 제2 롯데월드 건설이 이번 정부 들어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롯데칠성이 물류창고로 써온 서울 서초동 1만평 터 성격이 상업용으로 변경되면서 땅값이 10배 넘게 올랐다. 서울시가 용도 변경을 결정하기 직전 롯데가 주변 토지를 사들인 것이 드러나 의혹도 일었다. 지역 주민과 오래 갈등을 빚으며 지지부진했던 인천 계양구의 골프장 건설허가도 지난해 국토해양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를 통과했다.

70년대 그룹 초기 형성기와 판박이

최근 잘나가는 롯데의 모습은, 롯데가 국내에 들어와 급속도로 도약했던 197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일본에서 제과로 성공한 뒤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하면서 국내에 들어온 롯데는 1970년 인수합병과 국유재산 불하 등을 통해 빠르게 성장했다. 1970년 껌 포장용 은박지 생산을 위해 동방알미늄(현 롯데알미늄)을 인수했고, 74년 국내 최대 청량음료회사인 칠성사이다(현 롯데칠성)를, 78년 한일향료(롯데쇼핑에 합병)와 삼강하드아이스크림(현 롯데삼강), 평화건설(현 롯데건설), 79년 호남석유화학 등을 줄줄이 사들였다.

그중에서도 롯데가 국내에서 확실하게 발판을 마련한 사업은 호텔롯데의 건설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세워져 국내 최고 호텔이었던 소공동 반도호텔과 인근 국립중앙도서관 등 소공동 일대 땅을 1973~75년 매입해 국내 최대 호텔을 지었다. 정부의 관광진흥정책과 반도호텔 민영화 계획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롯데의 백화점 진출은 더욱 ‘운’이 필요했던 사업이었다. 70년대 정부는 외국인 투자회사의 백화점 사업을 규제하고 있었다. 재일동포로서 외국인 자본 유치 혜택을 받으며 국내에 진출한 신격호 회장은 집요하게 백화점 진출을 시도했고, 당시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은 1979년 별도의 내국법인을 세워 백화점 사업을 하라는 단서를 걸고 조건부 허가를 내줬다. 또한 당시 도심 인구집중 방지를 위해 4대문 안에서 백화점 신설을 규제하고 있었지만 롯데는 법인 이름을 ‘백화점’ 대신 ‘쇼핑센터’로 붙이는 방법으로 백화점 진출에 성공했다. 1983년에는 을지로 입구 최고 노른자위 땅인 산업은행 자리까지 낙찰받아 호텔과 백화점을 한 단계 더 키울 수 있었다.
발빠른 파워맨 영입 전략

롯데는 정권이 기업들한테 내리는 특혜와 각종 낙찰에 유독 강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인물을 영입하는 롯데의 독특한 전략이 그 배경이 아니냐는 지적이 오랫동안 롯데를 따라다닌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신격호 회장은 1967년 롯데제과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한국은행 총재와 상공부 장관,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낸 유창순 고문을 회장 자리에 앉혔다. 유 고문은 한국은행 도쿄지점장으로 근무하며 신 회장과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신군부가 들어선 1981년에는 중앙정보부 출신의 하태준씨를 호남석유화학 사장으로, 전 건설부 장관 이낙선씨를 롯데그룹 부회장으로 영입했다. 3당 합당 직후인 1990년 초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의 장인이자 이광학 전 공군참모총장의 딸을 며느리로 둔 김웅세씨를 롯데물산 사장으로 영입했다. 롯데물산은 제2 롯데월드 건립을 추진해오며 오랫동안 초고층 빌딩 건설허가를 놓고 공군과 맞붙어왔다.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서는 이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학과 동기동창인 장경작 전 롯데호텔 사장의 관계가 많은 관심을 끌기도 했다. 2005년 2월 롯데에 영입된 장 전 사장은 지난해 2월 호텔롯데, 롯데월드, 롯데면세점을 담당하는 호텔부문 총괄사장을 맡았다. 

승진 늦고 임원용 승용차조차 없어도 직원 충성도 높아

다른 기업과 달리 롯데에만 있는 개념이 있다. 일종의 계급 정년제다. 연한 내에 승진하지 못하면 다시 승진하기 어렵다. 공무원 조직에나 남아 있는 계장 직급이 존속되는 거의 유일한 기업이다.

임원들에게 승용차도 주지 않는다. 다른 기업들은 전무급 이상이면 기사와 자동차가 지급되지만, 롯데는 대표이사에게만 승용차가 나오고, 전무급 이상에겐 기사 없는 자동차만 지급되거나 자가용 승용차 운영비를 지급한다. 근검절약을 강조하는 신 회장의 경영철학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신 회장이 1978년께 “왜 스스로 운전하지 않는가. 자기 차는 자기가 몰도록 하라”고 지시한 뒤 정착된 전통이다.

롯데는 대부분의 진출 업종에서 1위를 지키지만 급여면에서는 최고 수준도 아니다. 그럼에도 다른 기업보다 이직률이 낮은 편이다. 이 때문에 에스케이 등 다른 재벌 그룹들이 롯데의 독특한 경영을 한때 연구하기도 했을 정도다.

이런 독특한 운영에도 롯데 직원들의 충성도가 높은 것은 승진이 안 돼도 거의 정년까지 회사를 다니는 평생고용 개념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는 경영진에게도 마찬가지다. 사장단 이동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고, 또 10년 넘게 장수하는 고령 최고경영자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한 번 믿은 사람은 끝까지 믿는다”는 것이 신 회장의 철학이라고 한다.

여기에 다른 기업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기업 경영 이념이나 이미지를 높이는 광고나 홍보도 하지 않는다. 롯데는 좋은 일이라도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무조건 꺼리는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튀지 말고 조용히 자기 일에 충실하라는 주의다.

포스트 신격호 시대 앞두고 기업문화가 바뀌는 걸까

그러나 이제 롯데만의 이런 독특한 문화가 서서히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는 신동빈 롯데 부회장이 있다. 일본 노무라증권에 몸담았던 금융전문가 출신답게 신 부회장은 공격적으로 인수합병전을 이끌고 있다.

최근 임원 인사에서 한꺼번에 임원 50명이 옷을 벗은 일도 평생직장 개념이 강한 롯데로선 매우 파격적인 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지금껏 이런 대규모 인사는 한 번도 없었다.

신 부회장은 2006년 롯데그룹 정책본부 부회장으로 실질적 총수 자리에 앉았지만, 취임 초기 성과가 좋지는 못했다. 심지어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비꼬는 일도 벌어졌다. 신 부회장이 주도해 인수했던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10여년 적자 행진을 이어왔고, 무엇보다도 수십년 동안 지켜온 유통업계 1위 자리를 신세계에 빼앗기는 수모까지 겪었다.

때문에 최근 공격적인 롯데의 행보를 재계는 예의 주시하고 있다. 초기 부진했던 신동빈 체제가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키우면서 본격적으로 롯데를 바꿔나갈 것이냐가 관심사다. 여기에 신격호 회장 이후 2세 오너들의 행보도 관심거리다. 얼마 전 출생 이후 20여년간 감춰져 있던 신 회장과 서미경씨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딸 유미씨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2세들의 지분 정리와 상속 작업이 시작됐다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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