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3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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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카페 통합검색 전체서비스 내 블로그 친구 주경야독 글목록 방명록 [스크랩] 환국 칸국 한국 한마음 | 2008.03.12 16:54 목록 크게 댓글쓰기 대부분의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저는 야구(baseball)를 좋아합니다.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타자가 홈런을 치고, 미국 메이저 리그 최초의 한국인 투수 박찬호 선수가 공을 잘 던지는 것을 좋아할지도 모르지만, 저는 외야 수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젠 나이가 좀 들어서 잘하기는 어렵지만 말입니다. 높이 솟아오른 공을 보면서 그 공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것이나 명상(冥想)을 하는 것이나 별로 다를 바 없습니다. 먼저 수비하는 곳에 무슨 다른 장애물은 없는지를 확인하고 오직 그 공만 보면서 달려가야 합니다. 이것은 불과 몇 초 사이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공이 배트에 맞는 소리가 들리면 이내 공의 위치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달려가야 하는데, 이때 잡념이 생기면 으레 그 공을 놓치게 됩니다. 요즘은 하도 놀이도 많아서 아이들이 야구를 하는 광경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야구광(野球狂)들도 실제로 경기하기가 쉽지 않은 여건이므로 그저 야구경기를 TV로 보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사실 야구는 장비도 많아야 하고 사람도 많아야 하니 동호회(同好會)를 하지 않은 다음에야 하기가 어렵죠. 그런데 TV에서 야구 경기를 보다보면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면 포수(catcher)가 투수(pitcher)에게 가서 뭔가 소곤소곤 의논하곤 하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야구 해설가들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그래요, 포수는 인코스(타자 몸쪽으로 가는 공)가 아니라 아웃코스(타자 몸 바깥쪽으로 가는 공)를 요구했는데 그 사인이 제대로 안 맞으니까 투수에게 가서 이야기하는 것이죠." 라거나, "커브(휘는 볼)로 승부를 해야 하는데 선남렬 투수가 자꾸 직구(直球)를 주니까 이민수 포수가 일단 브레이크를 건 것 같습니다."등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해설을 들을 때마다 저는 좀 다른 생각을 해봅니다. 늘 공을 주고받는 투수와 포수가 서로 주고받는 수신호(사인)를 제대로 모를 리는 없을 것인데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요? 저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대화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야, 너 제수씨(弟嫂氏)하고 싸웠냐? 잊어버려라. 오늘 경기 마치고 제수씨가 좋아하는 장미꽃이나 보내라." "어제 우리 술을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힘들지? 그래도 조금만 힘내자." "야, 신경 좀 쓰라. 저 감독과 코치 얼굴 한번 봐라. 눈을 부라리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지 않니? 오늘 밤 감독에게 시달릴 생각을 해봐라. 그리고 다음 경기에 제대로 출장하려면 이번 위기를 잘 넘겨야 해." (1) 이상한 논리, 『요동사』: 신삼한정통론(新三韓正統論) 최근 들어서 '국사해체론'이니'요동사(遼東史)'니 하는 관점들이 대두하여 마치 중국의 동북공정(쥬신사 말살 프로젝트)의 하나의 대안(代案)이 되는 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요동사'의 입장은 요동(遼東)의 역사는 한국사도 아니고 중국사도 아니라는 것이죠. '요동사'적인 관점은 변경사(Border history)적인 시각으로 요동의 역사를 보겠다는 것입니다. 즉 연구 대상이 어느 하나의 국민이나 민족국가의 단위에 포섭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만나고 교류하는 장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요동사'의 관점은 그 내용의 참신성에도 불구하고 매우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요동사'의 관점에서 주장하는 바는 마치 신판(新版) 삼한정통론(三韓正統論)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골자는 요동은 한국도 아니요 중국도 아닌 또 하나의 역사공동체라는 관점입니다. 이 이데올로기는 한국과 북방 유목민(범쥬신)과의 연계를 단절하고 단순히 '삼한(三韓) = 한국'이라는 등식으로 엮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고구려를 완전히 한국의 역사에서 배제하는 논리적 근거를 제공합니다. 마치 큰 강의 흐름을 잘라서 둑을 쌓아 작은 저수지로 만들려고 하는 시도입니다. 역사의 단절을 시도하는 것이죠. 물론 이런 종류의 시도는 그 동안 한국의 사학계가 줄기차게 해온 것이기도 합니다. 한족(漢族)들의 동북공정을 크게 도우는 행위지요. 그렇다면 『삼국지(三國志)』「동이전(東夷傳)」에는 부여·고구려·왜·삼한·동옥저·읍루·예 등이 서술되어 있는데 이들 나라들을 다시 요동과 한국이라는 식으로 나눠야 하겠지요. 반도 쥬신의 현실 안주적이고 축소 지향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동사'적인 관점은 요동 지역과 한반도 사이의 인종적 특성이나 문화적 공통성과 유기적인 관련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단지 중국 - 한국 이라는 현대 시점의 논리를 과거에 적용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죠. '요동사'에서는 "한(漢)나라의 중국 통일 이후에는 동이(東夷)는 요동·한국·일본 등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김한규, 『요동사』(문학과 지성사 : 2004)]."고 하고 있는데 이 말은 매우 애매하고 황당한 논리가 됩니다. 이 때 한국(韓國)은 삼한(三韓)이 되고 그 삼한이 오늘날 한국 민족의 원류라는 말밖에 되지 않지요[그러면 이후 요동 지역까지 지배했던 고구려와 백제(부여)는 어찌 됩니까? 그들의 영역은 요동과 한반도에 걸쳐 존재했지 않습니까? 또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발해(대고구려, 또는 후고구려)는 또 어떻게 됩니까?]. 한족(漢族)의 동북공정의 대안의 하나로 간주되기도 하는 '요동사' 개념이 가진 가장 위험한 점은 우리 민족사의 진원지(震源地)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고조선·부여·고구려·백제 등은 모두 요동을 근거지로 하거나 요동을 주요 세력권으로 한 국가들입니다. 특히 백제는 남부여(南夫餘)라고 하기도 하여 충실한 부여의 후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요동과 만주에서 건국한 금나라나 청나라는 신라(新羅)에서 나왔다고 하고 몽골은 고구려(高句麗)를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국가들이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요동의 국가라고만 한다면 상식적이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요동사'적 관점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오류는 한국(韓國)에 대한 이해를 잘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 이 점을 조목조목 살펴봅시다. (2) 환국(桓國)·한국(汗國)·한국(韓國) '요동사'를 포함하여 보수 사학계는 '한국(韓國) = 삼한(三韓)'이라는 식으로 한국을 파악하고 있는데 이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입니다. 즉 이 한(韓)이라는 말이 한반도 중남부의 삼한(三韓)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들은 한국(韓國)이라는 말이 중국 사서(史書)의 삼한(三韓)에서 온 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동사'적인 시각은 한국의 역사가 삼한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요동의 역사는 다른 역사공동체의 역사라고 우깁니다. 이것은 실증사학자들이 가지는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이제 구체적으로 이 점들을 �� 언어적 관점, 지리적 관점, 수장적(首長的 ) 관점, 유목민들의 일반적 명칭으로서의 한국, 종합고찰 등으로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언어적 관점 한국(韓國)에서 말하는 한(韓)은 중국의 한(韓)을 의미하거나 한반도의 삼한(三韓)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쥬신의 고유어를 한문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쥬신의 고유한 말을 한자(漢字)를 빌려서 표현한 말입니다. 예를 들면, 중국의 각종 사서에는 고구려만 해도 여러 가지로 표현되어있습니다. 즉 고구려는 高駒麗(『漢書』), 高麗(『舊唐書』;『新唐書』), 高離·豪離(『三國志』), 句高麗, 句麗(『三國史記』;『大東韻府群玉』) 등으로 적혀 있습니다. 따라서 고구려라는 말은 한자의 뜻으로는 알 수 없는 말이라는 얘기지요. 즉 고(高)·구(句)·호(豪)·고구(高句)·고구(高駒) 등의 말을 '가우리', '코리', '꼬리', '고리', '구리' 등의 말을 나타내는 용도로 사용된 것이죠. 『상서(尙書)』에는 "『한서(漢書)』에 '고구려', '부여', '한(韓)'이 있는데,'馬干'은 없으나, '馬干'이 곧 저 '韓'이라, 음은 같고 글자가 다를 뿐"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尙書』卷18 周官 弟22 孔穎達疏 참고).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일반적으로 한반도 남부에 거주하는 쥬신족들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는 이 '韓'이라는 말은 중국 전국시대의 한(韓)나라가 아니라 단지 그 음을 빌려서 표현한 말이라는 것인데 [마간], 또는 [ㅁ 가흔]·[한]·[카흔]·[카안]·[칸] 등으로 발음이 될 수가 있다는 말이지요[정재도,「'한'이냐 '韓'이냐 '馬干'이냐」『한글 새소식』365호(한글학회 : 2003. 1)]. 쉽게 말해서 우리 민족의 강역을 지칭하는'한(韓)'이라는 말은 분명히 한자(漢字) 말은 아니고 다만 음을 빌려 쓴 것이므로'馬干'으로 적어도 된다는 말이지요. 달리 말하면 칭기즈칸(成吉思汗, 또는 成吉斯汗)에서 사용된'한(汗)'으로 사용해도 되는 말이라는 것이지요. 이 한(汗)은 Kahn 이나 Han 등의 발음이 나는 말을 한자 말로 표기한데 불과합니다. 일단 여기서는 마한(馬韓)과 혼동하시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면 잉글랜드(England)를 영국(英國 : 빼어난 나라)이라고 할 수도 있고 비하하여 영국(嬰國 : 애송이 나라)으로 쓸 수도 있다는 얘기지요. 발음은 모두 [잉꾸어]로 똑같습니다. 한족(漢族)들은 거의 이런 식으로 주변민족들을 설정했으니까요. 그런데 '요동사'의 시각은 한국이라는 대상을 철저히 한반도 지역에만 국한 시킵니다. 그 근거로 든 것이 "고조선의 마지막 왕(末王)인 준(準)이 그 스스로를 한왕[自號韓王]"이라고 하는 기록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한'의 개념과는 많이 다릅니다. 즉 이 '한왕'이라는 말은 중국의 사가들이 '한'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생긴 말이지요. '한왕'은 동의 반복된 말로 '초가[草家]집'이라는 식으로 표현한데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이라는 말 자체가 왕(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국어 학자들도 견해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기문의 『국어사개설』에서 부여관명(夫餘官名)의 ka, 가(加) 등과 몽골고어 qan, 또는 신라어 관명의 한(翰)·간(干)은 같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먼저'한'이 고유어로서 가지는 주요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한'은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말로 보통 서양에서는'칸', 동양에서는'한'(일본에서는'간')으로 쓰이고 한반도에서도 '한'으로 사용합니다. ① 하늘[天]을 의미하는 경우 - 한인, 한웅 등, 한우물(하늘에 제사 지내는 우물) ② 우두머리[首長]를 의미하는 경우 -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것(마립간) ③ 크다[大]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 - 한밭[大田], 한길[大路] 등 ④ 하나[一]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 - 한 나라 (하나의 나라), 한 아버지 ⑤ 같다[同]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 - 한 핏줄, 알타이는 한 핏줄, 한 겨레 등 ⑥ 바르다[正]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 - '한복판' 등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韓國)에서 사용된 한국이라는 말은 위의 여러 가지 의미들이 복합적으로 사용된 것이지 구체적으로 고조선의 왕 이름이 한왕(韓王)이어서 한국이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요동사'적인 시각에서 한국(韓國)을 단순히 한왕(韓王)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보는 것은 한국에 대해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요동사'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 잘못되었으니 그 위에 지어놓은 모든 이론적 작업도 잘못되었다는 말이지요. 지리적 관점 여러분들 가운데는 언어적 관점으로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실제로 한국(韓國)이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었는지를 봅시다. 첫째, 신라 말기나 고려시대에도 조선·숙신·변한의 땅을 하나로 보는 관점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왕융(王隆)이 궁예(弓裔)에게 말한 기록이 그것이죠(大王若欲王朝鮮肅愼卞韓之地 :『高麗史』太祖紀). 이 점은 앞부분에서 이미 검토한 사항입니다('읍루의 함정, 그리고 카멜레온 숙신' 참고). 즉 한반도와 만주 및 요동을 하나의 범주로 사고하는 시각이 과거에 존재했다는 말입니다. 둘째, 요동과 만주 지역을 삼한(三韓)으로 말한 기록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청나라 때 편찬된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에 숙신(肅愼)에 대하여 "한(漢) 나라 때는 삼한(三韓)이라고 하고, 위진시대(魏晋時代)에는 읍루(挹樓)라고 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權兌遠,「濊·貊文化圈과 肅愼문제」,『論文集』43, 충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94). 숙신이라면 주로 만주 지역인데 이것도 삼한(三韓)으로 보는 관점이 있죠. 즉 삼한이라는 것이 단순히 한반도 중남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셋째, 요동의 북쪽도 한주(韓州)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신당서(新唐書)』에 따르면, 고구려 때 요동의 북쪽에 막힐부(鄚頡府)가 부여의 옛 땅이었고 (扶餘之故地 : 『新唐書』「渤海傳」), 이 땅을 요나라 때는 한주(韓州)로 불렀다는 것입니다(韓州 … 高麗置 鄚頡府 都督鄚·高二州 渤海因之 : ��遼史��「地理志」). 그리고 송(宋)나라 때의 기록을 보면 이 한주가 삼한의 땅(三韓之地)라고 합니다(曾公亮,『武經總要』卷16,「北蕃地理」). 이상의 기록들만 보아도 삼한이라는 말이 단순히 한반도, 또는 한반도 남부지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삼한이라는 것이 고조선·부여·고구려 등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좀 더 심한 예를 볼까요? 일본(日本) 규슈(九州)의 높은 산 가운데 가고시마와 미야자키에 걸쳐 있는 산 '가라쿠니다케(韓國岳)'가 있는데 이것은 '한국의 큰산(韓國岳)'이라는 뜻입니다. 이상하죠? 웬 한국산이 일본의 규슈에 있는가 말입니다. 이제는 여러분들도 확실히 아시겠죠? 여기서 사용된 한(韓)이 한반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쥬신족의 오랜 언어적인 전통에서 나온 말임에 유의해야합니다. 즉 한국인들이 많이 이주해가서 이름을 붙였거나 아니면 일반적인 쥬신적 의미의 한국의 뜻으로 사용했겠지요. 이 부분과 관련하여 이제 신채호 선생의 말씀을 한번 들어봅시다. "왕성(王姓)을 '해(解)'라 함은 태양에서 뜻을 취함이요, 왕호(王號)를 '불구래'(弗矩內)라 함은 태양의 광휘(光輝)에서 뜻을 취함이요, 천국(天國)을 '환국(桓國)'이라 함은 광명에서 뜻을 취함이니, 대개 조선족이 최초에 서방 파미르고원, 혹 몽고 등지에서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 동방으로 나와 불함산(不咸山)을 명월(明月)이 출입하는 곳 - 곧 광명신(光明神)의 서숙(棲宿)으로 알아 그 부근의 토지를 '조선(朝鮮)'이라 칭하니 조선도 고어(古語)의 광명이란 뜻이니[신채호, 『註解 朝鮮上古史』(단재 신채호 기념사업회 : 1994) 104쪽]." 신채호 선생은 단순히 한반도의 남쪽인 현재의 남한 지역이 우리 민족의 중심무대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여·고구려만 보더라도 우리의 역사가 남한 지역에 국한된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지요. 수장적(首長的) 관점 우리는 한국이 다양한 의미를 가진 말이라는 점을 분석했습니다. 그러면 이 가운데서도 '한'이 우두머리로 쓰이는 경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봅시다[이병도,『韓國古代史硏究』(博英社 : 1979) 53~54쪽]. ① 부여(夫餘)나 고구려(高句麗)의 경우에도 대인(大人)을 가(加[Kha])라고 한다. 그리고 만주나 몽골어에서 군장[君長(大人)]을 한(汗[Han]), 혹은 가한(可汗[Khan])이라 한다. ② 신라에서도 군장(君長), 또는 대인(大人)을 간(干[Khan]), 금(今[Khum]), 감(邯[Kham])이라 했고 신라 관직명(官職名) 중에 대아찬(大阿飡)을 한아찬(韓阿飡), 혹은 한찬(韓飡)이라고도 하고 대나마(大奈麻)를 한나마(韓奈麻), 대사(大舍)를 한사(韓舍)라고도 하였다. 이와 같이 대쥬신들은 우두머리나 임금을 한(칸)이라고 씁니다. 이 뜻은 어원적으로 주로 '하다[多 : 많다]'라는 형용사나 '크다[大]'라는 형용사에서 파생된 것이거나 종교적 지도자나 신(神)을 의미하는 감() 또는 가미, 신조(神鳥 : 신의 전령, 샤먼)인 까마귀[烏], 나아가서는 하나[一], 중간[中]이라는 의미와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알타이 계열의 종족들은 하늘[天]과 관련된 말들을 지도자의 호칭에 붙이기를 즐겨하는 특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병도 박사는 우두머리의 명칭에 하늘[天]과 관련된 것을 붙이는 것은 그들이 다스리는 지상의 국가들을 하늘의 국가로 만드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이병도,『韓國古代史硏究』(博英社 : 1979]. 그리고 환인(桓因)이라는 한문 용어는 불교의 '동방호법신 (東方護法神)'으로 되어 있으나 이것은 후일 불교가 자리 잡으면서 생긴 일일 듯하고 오늘도 흔히 쓰이는 '하느님'과 같은 단어로 생각되고 있지요. 앞서 본대로 백제어로 왕을 어라하(於羅瑕), 건길지(鞬吉支)라고 존칭하였고 『위서(魏書)』에는 고구려의 유리왕(누리왕)을 노려해(奴閭諧[누리해] : 온 누리를 비치는 해 = 東明)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즉 고구려어로는 임금을 '개~해'(諧)라 불렀고 수장(首長)을 의미하는 말로 '막리지(莫離支)'라고 했습니다.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땅 이름에서도 왕을 의미하는 '개'(皆)가 여러 군데 나타납니다. 즉 칸(큰, 한)이 다스리는 땅의 이름에 칸(汗)을 의미하는 말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신채호 선생은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건륭황제 가로되,'삼한(三韓)은 삼한(三汗)이요 삼한제국(三韓諸國)의 비리(卑離)는 곧 貝勒(패리)이니, 한(韓)이 패리(貝勒)를 통솔함은 동방제국(東方諸國)의 체례(體例)가 그러하다'하였으니 이 풀이가 가장 이세(理勢)에 합당하다 하노라. 신라에 거서간(居西干)·각간(角干) 등의 칭호가 있고 고구려와 백제에 가한(可汗) 등 신(神)에 대한 제례(祭禮)가 유(有)하니, 우리 고대에 '한(汗)'이란 관명(官名)이 있던 증거라, 고구려 때는 전국을 삼경(三京)에 나누고 경(京)마다 '한(汗)'을 두었기에 … [중략] … 진번(眞番)은 곧 진변(辰卞)이요, 三韓(삼한)은 곧 三汗(삼한)이요, 三汗(삼한)은 곧 三京(삼경) 장관(長官)의 이름이니 원(元) 태조(太祖) 성길사한(成吉思汗)의 분봉(分封)한 사한국(四汗國)의 사한(四汗) 같은 자일 것이라, 모두 후세의 창조한 국명(國名)들이 아니라 하노라[신채호,『註解 朝鮮上古文化史』(단재 신채호 기념사업회 : 1994)]." 신채호 선생. ⓒ김운회 즉 신채호 선생은 한국(韓國, 또는 汗國)이라는 말은 '칸의 나라'라는 의미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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