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2일 금요일

대법원2009도1746;한국슈넬제약.SETI연구소에서.김주성23.


23-말씀을전합니다.

아래 글 중에서 사실 또는 진실과 다른 부분들이 있음을 알립니다.
네티즌들은 일반적인 상식의 의미와 전문가적 지식의 경계에서 진실을 보고 있으나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역사와 진실을 배우셔야합니다.

모든 자료들을 받아들이기 전에
항상 충분한 검토와 검토를 거듭하셔야 되는
분들께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김주성23.

하나님.
============================rlawntjd2


하느님, 하나님.
하나님, 하느님.
그 분 창세기 1장 1절.

김주성23.
====================================================김주성23.

우리 가톨릭의 '하느님', 그리고 개신교의 '하나님'은 어떤 차이가 있고 왜 그런 이름으로 불리워야 하는 것인가? 이 글을 통해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고 함께 일치를 이룰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모색해 보고
자 한다.

1,하느님과 하나님에 대해서
가)'하느님'의 사전적이고 일반적인 의미
과연 국어 사전 내에서는 하느님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종교어로서 '하느님'은 '우주를 창조하고
주재한다고 믿어지는 초자연적인 절대자.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됨. 종교에 따라 여러 가지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어 짐. 하늘,황천이라고 정의된다. 이를 살펴보면 종교에 따라 여러 가지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어 진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가톨릭에서만 사용하는 용어는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사전에서는
'그리스도교에서 신봉하는 유일신. 천지(天地)의 창조주(創造主)이며 전지전능하고 영원한 존재로서,
우주 만물을 섭리로써 다스림, 천주(天主), 하나님'이라고 덧붙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사전에
서 '하나님'이란 단어를 찾아보니 '하느님을 개신교(改新敎)에서 이르는 말'이라고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가톨릭의 '하느님'과 개신교의 '하나님'은 결코 다른 단어를 의미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일반적인 천공신(天空神) 개념으로 볼 때 하느님은 우리말로는 하늘, 한자로는 천(天)의 존칭어인
데, 광활하고도 높은 창공은 종교적 궁극자 및 최고원리의 상징으로서 인류 종교현상 속에서 가장 보편
적으로 발견되는 종교표현이다. 종교학자들은 고대인들이 하늘이나 땅을 단순한 현상이나 물체로 예배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나타나는 신적인 힘을 보고 그 거룩함의 신성을 경외한 것임을 밝혀내었다.
가장 오래된 문자문화를 지닌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아누(Anu)신, 가나안 지방의 엘(El)신, 그리스의
제우스(Zeus)신들은 모두 천공신(天空神)으로서 다신(多神)들 중에서 그들이 아버지 혹은 천상회의의
임금으로서 권위의 상징이었다.

나)한국 고유의 신앙으로서 받아들여진 '하느님'
중국에 처음 그리스도교를 소개하는데 성공한 마테오리치(Matteo Ricci)가 유교경전에 나오는 상제
혹은 천이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 같은 절대신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여 야훼를 천주(天主)라고 번역하고 유교적 용어를 빌어 그리스도교를 중국 지식인들에게 소개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그가
쓴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읽은 조선 후기의 실학의 선구자요 서학(西學)의 학문적 연구를 시작한
이익(李瀷)은 "천주는 곧 유가의 상제이다"라고 평했다. 이 근본적 공통점이 그리스도교가 짧은 시일
내에 한국인들의 심성에 깊이 뿌리박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사실이었다.

다)개신교가 말하는 '하나님'
개신교의 경우는 한국 전래의 형태가 구체적인 국내선교나 교리전파에 앞서서 국외에서 성서의
한글번역이 선행되었고, 또한 그 후 한국 개신교의 공식적인 '하나님' 칭호에 대한 태도는 그들이
시대별로 사용한 성서기록에 의거했기 때문에 곧 그들의 '하나님' 칭호에 대한 변천은 성서 번역사와
연관되어 있다. 먼저 대체적으로 한글성서의 번역과 사용시기를 구별해 보면 먼저 개인역시대(1882-
1903), 공인역시대(1904-36), 개역시대(1937-51), 맞춤법 통일안에 따른 개정판시대(1952-70),
신·구교공동번역시대(1971-현재)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한글성서에서 '하나님'에 대한 칭호를
채용할 때 계속적으로 상관된 개념은 곧 '하늘'(heaven)과 '하나'(one)이다. 그리고 이들 개념의 복합,
지역적 방언, 한글맞춤법과 한국어 발음의 변천 등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 것으로 살펴진다.

'하나님'이란 명칭이 옳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의하면, '하나님'은 '하나'를 의미하므로 유일신을
의미하는 것이며, '크다'를 의미하는 '한'에 통하는 말이므로 신의 위대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명칭보다 하나님이라는 명칭이 낫다고 한다. 하나님과 하느님 사이에 무슨 근본적 차이는
없는 것으로 이들도 인정하지만 개신교의 신개념에 더 가깝다고 생각되는 '하나님'이 더 적절하다고
보고 있다. 또한 현재 '하나님'이라고 하면 그리스도교의 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나
'하느님'이라고 부르면 그리스도교의 신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통속적인 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특히
무당 종교의 신으로 오해한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이렇듯 기타 토속, 외래종교도 사용하는 신
명칭인 '하느님'과 구별, 개신교의 하나님을 선별 호칭할 필요성, 그리고 국가제정의 공용어 문법체계에
꼭 합치되지 않아도 된다는 독자적 고유명사화 등의 성격을 주장하고 있다.

라)공동번역 시대의 '하느님'
구약성서는 이스라엘인들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및 가나안 지방의 하느님 신앙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좋은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최고신이던 천공신 '엘'신, 혹은 엘로힘(Elohim)은 이스라엘의 고유한 신의
명칭이었던 야훼와 동일시되면서 유일신화되었고 엘신의 여러 가지 특성들도 수용되었다. 따라서 엘신
밑에 있던 많은 신들은 우상들로 배격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천사들로 격하되어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알리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사자들이 되었다. 한국의 가톨릭과 개신교 학자들이 성서
공동번역을 계기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야훼를 '하느님'이라고 함께 부르기로 결정한 것은
한국고유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하느님 신앙을 수용하자는 중요한 태도라고 하겠다. 이는 또한 가톨릭의
한문식 칭호인 '천주'를 한글화하고 개신교는 종래의 '하늘'과 연결된 하나님 개념을 회복한다는
의미이다. '하느님'으로 칭호를 통일한 이유를 설명하는 측은 합당하고 정당한 칭호의 회복임을
강조하고, 민족의 고유한 언어 표현적인 신 개념의 공통성을 계승하여야 함을 밝혔다. 특히 '하나'의
의미에 연결된 '하나님'이 그 칭호로서 부당한 이유를 첫째 언어학적으로 불가능한 형태이고, 둘째
유일신 개념을 진정으로 나타내지도 못하고, 셋째 도리어 희랍철학, 중국철학, 대종교, 천도교의 개념과
오해되고, 넷째 '하느님'을 사용하는 세계와 통화를 두절시키고, 다섯째 역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
이라는 방언(方言)에서 우발적으로 도입된 표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마)언어학적 관점에서의 하느님과 하나님
인간은 그 사회 안에 공동 유산으로서 '언어'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 언어를 통해서 인간과 인간, 그리고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맺어 왔다. 그러므로 인간은 항상 그 말(언어)로써 '의미'를 새롭게 창조하는
언어적 존재(Homo loguens)이며 창조적 존재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도인의 신(神) 찬미
행위의 그 모두가 언어 구조로 표현된다는 엄연한 '말의 사건'앞에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이 눈을
떠보아야겠다. 한국 교회의 현실을 보면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언중(言衆)이요, 더욱이 같은 그리스
도인이면서도 한 신(神)의 명칭이 '하느님', '하나님' 등으로 서로 위화감을 주도록 다르다. 그리하여
한분이신 야훼를 인간들의 자의적인 해석에 의해 두 분으로 갈라놓은 결과를 초래하게 하였고, 나아가
한국 그리스도교의 일치-가톨릭과 개신교의 일치-를 방해하는 요소 중의 하나로 작용함으로써, 야훼의
중요한 가르침인 사랑(이웃사랑)을 앞장서 실천해야 하는 교회가 오히려 그 편협함을 야기하지는 않았
는지 반성해 본다. 그리하여 여기서는 감히 한국 그리스도교의 일치라는 거대한 목표를 염두하고서,
그 구체적인 실천 방법의 하나로써 가톨릭과 개신교가 달리 사용하고 있는 신(神) 명칭-하느님, 하나님
-의 시비를 어원(語原)을 따져 살피는 국어학적 입장을 토대로 가려 보겠다.

① 음운론적 변천
20세기 초 성서본들에 혼용되어 있는 두 동의 동음어인 (同義 同音語) ' 하 님'(=하느님)과 하나님은
본시 언중(言衆)들이 그 어형 안의 <·>와 <ㅡ designtimesp=9188>라는 두 이형태(異形態)의 변천 관계
를 바로 수용 못한 지극히 단순한 오류에서 시작된다. 즉 이 두 말은 당시에 동의어이며, 동음어인것을
이의어(異意語)로 보았다는 말이다. <·>의 동요가 15세기부터 보이기 시작했으나 기록 문자의 보수성
으로 하여 <·>의 제2차 소실(문자의 불사용)은1933년 한글맞춤법 통일안에서폐기하기를 발표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었으니, 이것이 제1음절의 ·의 소실로써, �나(ㅡ)>하나,  랑(愛)>사랑,  암(心)>마음
의 경우다. 그러나 이런 구별은 후대에 올수록 없어지고 동일 음가에서 오는 혼철(混綴)과 오철(誤綴)이
늘어난다. 이는 특히 국역 성서 초기부터 1956년까지 그 60년간 일반적으로 만연된 현상이었다.
그러다가 꾸준히 자리잡아 오던 <·>의제1차 소실(제2음절이하에서 ·>ㅡ로되는 현상)이확정되어
아 >아들, 말 >말씀, 하 >하늘, 오 날>오늘날로 표준어화 되었다. 이것이 한국어 음운변천사에
중대한 사실인 <·>의 소실과 이에 따른 모음조화의 붕괴 현상이니 오늘날 '오 '을 '오날'로 '아 '을 '아달'로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유독 개신교에서만은 위에 설명한 바 한국어 일반 원칙인 모음조화
붕괴형인 '하느님' 표기와는여전히 괴리된'말 >말삼, 하 >하날'의'하 님>하나님' 형태를 고수하고 있다.

② 사전적 의미
사전적 의미로도 한국어의 <·>음 계열과 <ㅏ designtimesp=9192>음 계열의 용례 표기는 판이한
것이다.
"天은 하 히라, ㅡ은 �나히라."

초기 국역 성서 중에 간혹 보인 '하나님' 표기가 한분(유일신)이신 �나(ㅡ)의 뜻이었더라면
당시<·>글자가 쓰인 1933년 이전의(한글 맞춤법 통일안 적용 성서에선 1956년부터 적용함) 수십 종의
성서본에서는 '�나님'이 있어야 한다.

한편 어휘론적으로 보아 '하느님'은 그 명칭상 창조물인 하늘을 존칭하는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기우를 토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에서 올리는 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창세이전부터 하느님께 속한 선재(先在)적 하늘(heaven)이지, 저 시공적(時空)적
인 창조물 하늘(sky)과는 구별된다.

③ 어원학적 고찰
말의 어원을 따져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혹자는 '하느님'은 '한울님, 하누님, 한얼님, 옥황상제,
천공(天公), 천제(天帝), 상제(上帝), 천주(天主)'등과 같은 의미의 민속 신앙적인 토박이말의 유사어가
아니냐고 할 것이다. 과연 이들은 다같은 '하 님'사고의 자유로운 표음철(表音綴)결과로 유래된 또는
그러한 민간 어원설에서 나온 아류어(亞流語)들로서, 나중에 제각기 그 의미를 부여하고 용례를 나누어
서 자기 나름대로 선택하고 있는 것들에서 포괄적으로 자유로운 표지의 분화가 가능하다. 그리하여
조어(造語)원리로나 음운 법칙에는 어긋나는 맞춤법인 '하나님'까지 출현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가령
'한글'이란 원의(原義)속에 함축된 뜻이 '바르고 크고 유일한 (正, 大, 一)'의 의미론적 근거가 있다고
보고서, 한글(正音), 한길(大路), 한밭(大田), 한솔(一松)이라면 이와 동일 구조인 '하나님'도 '수량
관형사형(접두사)+어근'의 구조이니 결국은'하나+님>한님'으로 자연이 축약 결합되고 만다. 반대로
'하나님'이 '어근+접미사'의 구조라면, 어근 '하나'(수사)를 존칭하는 결과라, 명사의 존칭인
'하 님(天主)'이나 '선생님'과는 똑같은 조어 구조이지만 결과가 석연치 않다. 즉 '주님'이 '주'(主)의
존칭이라면, '하나님'도 '하나'라는 님, 곧 하나(一)의 존칭어이니 이는 수자신(數神)이 되고 만다.
한국어에서 수사(數詞)가 파생 결합할 때는 독립성 없는 수량 관형사형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결국
명사 존칭어는 있어도, '수사+존칭 접미사'의 결합은 한국어에선 불가능한 것이다.

④ 애매성과 다의성
지금까지 한국어 신명은 '하나님'이라는 유일신론적 주장과 한편 '하 (天)님'이었으니 '하느님'이
옳다는 두 가지의 주장이었다. 여기에서는 원래'하 +님(天主)>하 님'인 것을 철자법 의식이 희박하던
당시에 '하나님'으로 오철(誤綴)하게 됐고, 다시금 개신교 교리상 유일신인 것에 근거하여 동일 음가인
하나(一)를 유추하여 새 뜻을 억지로 만들어 냈음을 제시하였다. 이를 다시 종합해 보면 한국어 신명은
가히 다의적이다. 하나님이라 불러도 그 속엔 지존자이신 최고신 야훼의 신성이 변함없고, 하느님이라
불러도 역시 유일신의 신성이 변질되는 것이 없다. 이 양면은 불가분리성으로 신성과 그 권능에 속한
것이요, 인간 언어로 제약받으실 리 없지 않은가. 그리고 이 한국적 신관의 다의성은 활용함에 따라서는
언어 문학적 측면에서 상승적인 풍부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 고백상의 막연한 애매성을
취하는 은폐가 아니다. 보다 내포(內包)가 풍부한 신 개념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희망일 뿐이다.
구체적인 신명에 관해서는 우리 한국어의 최고신 개념인 '하느님'을 한국 그리스도교의 신명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⑤ 표준어 문제
그리스도교계를 떠나서 국가 언어 정책면에서도 표준어로의 일치라는 중대한 선결 문제가 '하느님'이냐
'하나님'이냐를 가름함에 걸려 있다. 그리스도인은 곧 한국어의 언중이며, 한국어 성서는 곧 그리스도교
인의 것만이 아닌 한국인의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어 성서도 한국 사회 일반과의 조화가 선결 요인이다.
이 '말의 일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혼 속에 새 일치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제각기 가슴마다에
자기 논리보다는 조국과 겨레를 껴안으려는 사랑의 마음이 싹틀 때, 그 하나에로의 열정이 그대로 한국
그리스도교의 일치를 이루는 힘이 될 것이다.

2,결론
공동번역 성서의 머리말을 보면 "우리 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신·구교가 연합하여 우리말로 성서를
내놓게 된 것은 신구교 자체뿐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를 위하여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뜻깊은 일이다"
라고 이 번역 작업을 평가했다. 함께 '하느님'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로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는 개신교에 대해 다소 유감스러운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갈라진 형제들에게서 발견되는 모습들을 참된 그리스도교적 보화들을 공동유산(共同遺産)
에서 이어받은 것으로 알아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인정하고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방법은 다르지만, 하나이요 볼 수 있는 하느님의 교회를 갈망하고 있으며, 이 교회가 참된 보편적
교회로서 온 세상에 전파되어 세상이 복음에로 귀의하고 구원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댓글 1개:

김주성23;620506-1683421 :

어느 네티즌의 귀한 자료입니다.
자유와 평등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글이니.
귀하게보시고 배우시되

판단하지마시기를......

2010.03.12. 김주성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