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7일 수요일

23-더블라이센스.김주성23.

의시·사시 동시 합격자 28명 ‘더블 라이선스’ 시대 주도

오전엔 의사나 의대 교수로, 오후엔 법조인으로 일하며 산다면 어떨까. 의사로 수십 년간 일하다가 판·검사, 변호사 또는 법대 교수로 전업해 나머지 인생을 사는 건 어떨까. 의사든 변호사든 하나가 되기도 힘든데 양쪽을 넘나든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다.

그 런데 실제로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의사고시와 사법시험에 모두 합격해 ‘더블 라이선스’를 가진 사람들 얘기다. 두 가지 자격증이 있다고 해도 환자 치료를 하면서 법조인으로 사는 경우는 없다. 한쪽에 선택과 집중을 하기 때문이다. 언제든 전업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

국내 의사 출신 법조인의 효시는 재작년 작고한 전용성 변호사다. 1938년 의사 면허를 취득해 의사로 일했던 그는 58년 서울중앙지법 판사가 됐고 7년 뒤 다시 의학계로 돌아가 서울대에서 내과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 재 의사 면허를 따고 사시에 합격한 법조인은 26명. 이 중 6~7명은 인턴·레지던트를 마치고 전문의 자격증까지 땄다. 변호사가 19명으로 가장 많고 검사 1명, 판사 4명, 법대 교수 2명 등으로 다양하다. 이들은 1년에 한두 차례 친목 모임을 한다. 자연스럽게 만나 의료소송 판례와 동향, 법조계 관련 정보를 교환한다. 사시에 합격한 후 의사 면허를 취득한 사람은 2명이다.

그 들은 대부분 학문적 관심과 적성의 차이, 경제적인 이유로 두 가지 전문 분야를 동시에 경험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들은 적지 않은 경우가 배우자가 의사(또는 치과의사)였다. 공중보건의 근무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의학과 법학의 통섭 현상은 법학전문대학원과 의학전문대학원이 생기면서 더욱 확대되고 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으로 법학 공부”
더 블 라이선스 소지자들이 의학에서 법학으로까지 시야를 넓히게 된 계기는 다양하다. 서울 서초동 교대역 부근에 위치한 의성법률사무소. 부산대 의대를 나온 이동필(43) 변호사가 이곳 대표다. 이 변호사는 내과 전문의 자격증이 있다. 마산동서병원 내과과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의사로서 순탄한 생활을 하던 그는 99년 극력 반대하는 아내(소아과 의사)를 “3년 내에 사시에 붙겠다”고 설득했다. 서울로 올라와 신림동 고시촌 원룸생활을 시작했다. 마침 그해 의약분업 사태가 발생했고 의대 동기들이 자신을 부러워하기도 했단다. 그는 2002년 사시에 합격한 후 미련 없이 법조인의 길로 들어섰다.

이 변호사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법대와 의대를 놓고 고민하다 의대를 택했는데 아쉬움이 남았다. 공중보건의를 하면서 틈틈이 법률 서적을 뒤적이다가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직업으로서의 만족도를 물었다. “삶의 질은 변호사가 낫고 직업적 보람은 의사가 나은 것 같다”고 답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어느 쪽이 나을까. 이 변호사는 “개업의보다는 적고 봉직의(병원 취업 의사)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장 연화(40·여) 인하대 법대 교수의 전직 경력은 의사 출신 법조인 가운데 가장 화려하다. 장 교수는 의사→검사→변호사→대학 교수로 네 차례 변신했다. 연세대 치대를 마치자마자 법대로 편입한 그녀는 사시 합격 이후 2001년 서울서부지청에서 검사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2006년 인천에서 변호사로 개업한 지 1년 만에 인하대 법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로스쿨 인가를 앞두고서였다.

“제가 미쳤었나봐요. 치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잘 벌 때였는데 법학 공부를 진짜 하고 싶었어요. 해보니 재미있어서 이 길로 들어섰어요. 치과의사 모임에 가면 법조인인 저를 부러워하고 법조인 모임에 가면 그들은 치과의사를 부러워하더라고요. 서로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한 동경심이 강한 것 같아요.”

“의대 갔지만 내 적성은 변호사였다”
이동필 변호사와 의성법률사무소 창업 동기인 김연희(40·여) 변호사도 가정의학과 전문의다. 개업 4년차. 김 변호사는 “의사 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사시를 택했다”고 말했다.

“레지던트 때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의료 차트를 보면 저절로 한숨이 나오곤 했어요. 환자들을 진료하고 밤에 집에 가면 공허했고요. 한마디도 안 한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렇게 평생 살아갈 자신이 없었어요.”

그 녀에게 변호사는 천직이다. 넘치는 끼를 케이블 TV e채널의 ‘블라인드 스토리 주홍글씨’에서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 진행자다. 방송 2년째. “실화를 바탕으로 범죄를 재구성하는 르포 드라마인데 개편 때마다 살아남는 걸 보면 제가 진행을 맛깔스럽게 한다는 것 아니겠느냐”며 웃는다.

그녀는 보람 있었던 사건을 묻자 1년여 전 것을 꺼냈다. 출산 과정에서 의사 과실로 베트남인 산모가 1급 뇌손상을 입은 사건이었다. “처음엔 무조건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하던 의사를 상대로 진료기록감정 신청을 했어요. 의사가 분만촉진제만 주사했어도 산모가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의료 지식이 없었다면 패소했을 뻔했던 거죠. 지난해 말 조정을 통해 1억8000만원 손해배상과 치료비 전액을 받게 됐죠. 남편이 한국인 교사였는데 고마워하더라고요.”

결기를 보이기도 했다. “열흘 전에 유명 병원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서 졌어요. 그날 밤에 사무실에서 직원들하고 소폭 많이 마셨죠. 항소했는데 대법원까지 가서 판례를 바꿀 겁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의료소송 중에서는 골절 등 정형외과 관련 소송이 쉽고 산부인과 관련 사건이 제일 어렵다고 한다. 분만 상황 자체가 경황이 없는 데다 진료기록부에도 나타나는 게 없어 실체를 규명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이 때문에 판사들도 맡기를 껄끄러워한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의사 출신 판·검사, 의료재판·수사서 두각
김 변호사의 중·고교 때 동창인 수원지검 강보경(38·여) 검사. 지난해 임관되자마자 배치됐다. 가자마자 이혜진·우예슬 양 납치살해범인 정성현 사건 수사에 참여했다. 진단방사선과 전문의 자격이 효자였다. 강 검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넘어온 혜진·예슬양 부검 결과를 분석하는 일을 맡았다.

정이 살해한 군포 노래방 도우미의 검시는 현장에 직접 나가서 했다. 당시 시신은 백골화돼 있었다고 한다. 강 검사는 “의사가 환자 개인을 치료한다면 검사는 사회적 질병을 예방치료하는 직업으로 큰 틀에서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 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일하는 노태헌(42) 판사 역시 서울대대학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다. 서울대 의대 예과와 본과에 다닐 때인 80년대 중후반 의료사고가 잦았다. 진료를 거부당한 응급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다 사망한 사건도 빈발했다. 그는 사시로 방향을 틀었다. 노 판사는 “의사가 평생을 통해 자신이 살렸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3명이라고 한다면 판사는 노력 여하에 따라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판사 임관 이후 의료 사건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노 판사의 꿈은 자신의 의학지식을 활용해 의료 분쟁과 관련된 대법원 판례를 정리하는 것이라고 한다.

의학과 법학의 접점은 어딜까. 노 판사는 학문의 내용은 다르지만 그 내용을 습득하는 방식이나 필요한 능력은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는 “의학과 법학은 처음에 전문용어를 외우고 그 다음에 논리를 세우는 방법을 알면 공부하기 쉽다. 내용상 공통점이 없기 때문에 두 가지를 다 아는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의료소송 전문가되려고 의사 면허 따”
이들과는 달리 변호사가 의대에 진학해 의사 면허를 딴 사람은 국내에 둘뿐이다. 드라마 ‘종합병원’의 여주인공 정하윤(김정은 분)처럼 사시를 패스한 뒤 아버지가 의료사고로 사망한 비밀을 간직하고 뛰어든 경우는 없다.

국 내 변호사 출신 의사 1호인 이경권(39)씨. 그는 2004년 가톨릭대 의대에 편입해 지난해 의사 면허를 땄다. 이후 분당 서울대병원 법무전담 교수로 임용됐다. 병원 내 인하우스변호사 격으로 이 또한 국내 1호다. 일주일에 2~3일은 분당병원으로 출근해 병원 관련 분쟁과 경영 및 인사 관련 법무를 처리한다. 나머지 2~3일은 서울 삼성동의 법무법인 조율로 출근한다. 법인 내 의료 소송 전탐팀을 이끌고 있다. 이 변호사는 “의학 공부를 하고 다시 변호사로 돌아오니 각 분야 의사들과 전문적인 대화를 하는 데 지장이 없어졌고 변호사 업무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분야 2호인 이용환(35) 변호사도 2004년 변호사 개업을 했다가 이듬해 경희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했다. 올해 수료한 이 변호사는 “의료 분야에 관심이 있었는데 마침 의학전문대학원이 생겨 실행에 옮겼던 것”이라고 말했다. 예전엔 수능까지 다시 봐야 했으나 입학시험만 보고 4년이면 졸업할 수 있게 된 게 결심을 앞당긴 계기였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처음 강의를 듣는데 전문용어가 많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너무 힘들어서 항상 자퇴서를 가슴에 넣고 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중반 대학원에 다니면서 겸업을 해온 변호사로 돌아갔다. 대신 대학원에서 배운 보건 의료 및 병원시스템 관련 의학지식을 십분 활용할 꿈에 부풀어 있다.

올 해 연세대 의대 수석 졸업생인 최지헌(26)씨는 인턴을 지원하는 대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했다. 최근엔 치대 졸업생들의 크로스오버 열풍도 거세다. 서울대 치대 출신 문모씨는 공중보건의로 있던 2006년 사시에 합격했고 조만간 사법연수원에 입소할 계획이다.

의료 소송 시장의 규모는 1000억~2000억원대로 추산되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다. 분쟁의 80%가량이 합의나 조정단계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의료재판부에 접수된 의료 소송이 매년 600건가량인데 이를 기준으로 추산한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커지고 있다. 장연화 교수는 “의료 소송 건수가 늘면서 전문인력의 수요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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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2.22 : 입력 / 2009.02.24 13: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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