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의 희귀 십자가(2)] 독일의 고리 십자가 |
고리 십자가’는 독일 마인강 유역 뢰델제의 슈반베르크 성에 본부를 둔 공동체 카스텔러 링(Casteller Ring)의 상징이다. 카스텔러 링은 함께 생활하고,함께 기도하고,함께 일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이 공동체는 독일 루터교에 속한 수도회로 여성 수도자들이 함께 거주하며 생활과 사업을 책임지고 있다. 이 곳은 개방형 수도원인데 묵상훈련,성서연구,음악치유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열어 휴식과 위로가 필요한 공동체 밖에 있는 사람을 널리 부른다. 이곳에 머무는 손님들은 하루에 네 차례씩 정시에 열리는 기도회와 주일에 열리는 성찬예배에 초대받는다. 십자가의 원형은 주후 2∼3세기쯤부터 로마와 갈리아에서 이주한 사람들에 의해 전래된 뒤 아일랜드와 브리튼에 걸쳐 널리 존재하던 고대 교회인 켈트교회(Celtic Church) 십자가에서 비롯된 것이다. 켈 트교회 십자가의 특징은 십자가 사방을 하나의 원형 고리로 연결한 점이다. 이민족의 침입으로 이미 소멸한 켈트문화와 교회의 유산은 십자가를 통해서 여전히 다양하게 확인된다. 유명한 영국의 아이오나(Iona) 수도원 등 많은 공동체들은 ‘켈트 십자가’ 상징을 통해 그 전통을 공유하고 있다. 켈트의 영성은 오늘의 교회가 새롭게 발견해야할 고대의 위대한 영적 전통이다.
독수리 십자가
독 수리 십자가’는 개신교 요한봉사회의 십자가 심벌이다. 성경은 독수리를 빗대어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5)라면서 은총에 의해 새롭게 될 영혼을 일깨운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가리켜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사 40:31)라고 강조한다. 알 파와 오메가가 새겨진 성경 위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고 사뿐히 독수리가 내려앉았다. 헬라어 알파와 오메가는 시작과 끝,곧 영원하신 약속의 말씀이며 처음부터 나중까지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상기시켜준다. 특히 독수리는 태양을 향해 비상하고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새이기 때문에 승리를 자랑하고 영광을 상징하는 짐승으로 자주 인용됐다. 전통적으로 교회에서 성경 낭독대에 독수리상을 조각해 놓은 것은 바로 성경에 대한 올바른 영감을 표현한 것이다. 독 수리는 그리스도교 신앙 전통과 어울려 오랫동안 상징으로 쓰였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하늘 보좌의 네 짐승은 초대교회 이래로 복음서 기록자들을 상징해왔다.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계 4:7) 아우구스티누스는 사자를 마태복음으로,사람을 마가복음으로,송아지를 누가복음,그리고 독수리를 요한복음과 관련 지어 설명했다. 특히 독수리는 사도 요한을 상징한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계 22:13)
무지개 십자가
‘ 무지개 십자가’는 독일 쾰른에서 열리는 선교축제인 미쉬오날레의 상징이다. 1979년에 시작한 이후 해마다 열리는 선교축제는 신앙을 널리 알리고 선교에 대한 관심을 높여 왔다. 라인강변에 위치한 산업박람회장은 해마다 선교장터로 이용돼 왔다. 교 회사에서 무지개를 십자가로 표현해온 전통은 매우 뿌리가 깊다. 일찍이 돌위에 무지개로 표현한 십자가 부조가 시리아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성경에서 무지개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형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겔 1:28) 선교축제가 무지개를 높이 내건 이유는 유럽사회에서 한껏 위축된 교회 분위기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선교적 열정으로 다시 분발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 특히 선교 현장에 대한 다양한 보고와 음악회,전시,성경공부,간접 현장체험 등을 통해 사람을 불러모으고 선교 현장의 일꾼에게 새로운 힘을 충전한다. 무 지개 십자가는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뜻한다. 2개의 무지개가 수평과 수직으로 엇갈려 있는 쌍무지개는 평화를 뜻하는 희망의 전달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날씨가 갠 후에는 언제나 하늘에 걸리는 무지개처럼 하나님은 한결같은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창 9:16)
미로십자가 ‘ 미로(Le Labyrinthe) 십자가’는 프랑스 싸르트르 교회 예배당 바닥에 새겨진 미로(迷路) 형태의 십자가이다. 이 교회를 찾아 온 순례자들은 참회하는 마음으로 ‘십자가의 길 기도문’을 암송하면서 무릎으로 기어 꽃잎 모양의 중심부인 미로의 끝을 찾아갔다. 출발점부터 중심부까지 11개의 원을 겹겹이 돌게 되어 있으며,이 미로의 총 길이는 262뻍이다. 미 로 십자가는 가로축과 세로축을 경계로 열리고 닫히는 길들을 차례로 메워가면서 한 가운데에 들어앉도록 설계됐다. 바로 원형의 미로는 ‘십자가의 길’의 축소판이다. 내 삶에서 미로의 끝은 언저리에 있지 않고 바로 중심에 있음을 일깨워 주고 있다. 프 랑스 루아르 지방에 위치한 싸르트르 교회는 ‘돌에 새긴 성경’이라는 별명처럼 1000년 동안 고집스럽게 제 자리를 지켜왔다. 특히 이곳은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시작인 앙리 4세가 대관식을 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는 ‘위그노’ 즉 개신교인이었던 까닭에 관례대로 랭스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루지 못했다. 비록 시한부가 되고 말았지만 앙리 4세는 1598년,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에 평화를 가져온 낭트칙령을 선포했다. 예로부터 ‘십자가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관련한 14개 처소를 말씀과 함께 묵상하며 기도하도록 만들어졌다. “나의 기도로 주의 앞에 달하게 하시며 주의 귀를 나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소서”(시 88:2).
빛 십자가 ‘ 빛 십자가’는 독일 비텐시 기독교사회봉사국이 발행하는 선교소식지 ‘사마리아인’(Der Samariter)의 로고이다. 흑백의 조형 구성을 통해 팔방으로 퍼지는 빛살 효과는 매우 단순하고 반복적이다. 중심으로부터 단계적인 파장을 그리며 형성돼가는 마름모꼴의 동심원들이 물결처럼 널리 퍼져나간다. 십 자가를 가슴에 품은 지구 형태의 온 세상은 빛의 무늬로 아롱거린다. 예수님은 스스로 빛이라고 하시며 동시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라고 일깨워주셨다. 빛은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인간은 흑과 백이라는 지나친 이분법으로만 빛의 한계를 재단해왔다. 빛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인간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지 못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스스로 ‘세상의 빛’임을 밝히셨다. 예수님은 ‘떡’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생명의 떡’ 그 자체이며 생명의 근원인 빛이 돼 영원한 구원을 약속하셨다. 빛을 통해 모든 생명이 드러난다. 사람들이 찾고자 한 것은 가상공간이 아닌 생생한 현실이었다. 배고픔과 목마름,어둠이란 인간의 구체적인 요구에 대해 ‘빛 십자가’는 진실한 응답으로 다가가고 있다. 빛은 사람들의 소망에 대한 그리스도의 드러남이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파장 십자가 ‘ 파장 십자가’는 독일 개신교에서 청각장애인을 돕는 공동체(DAFEG)의 십자가다. 듣지 못하는 것과 말하지 못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장애다. 우리말로 농아(聾啞)는 귀머거리와 벙어리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듣지 못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 파장 십자가는 십자가를 중심으로 사방을 향해 소리 물결이 겹겹이,둥글게,멀리 퍼져나가는 형상이다. 소리 물결로 이뤄진 파장은 울림과 떨림으로 구성돼 있다. 이 파장을 통해 본래 십자가는 더욱 커져 이중의 겹 십자가를 이뤘다. 두 개의 십자가로 구성된 파장 십자가는 십자가의 핵과 분열을 보여준다. 중심에 위치한 십자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면 그 위에 겹쳐진 커다란 십자가는 자기 자신의 고백과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울림일 따름이다. 이러한 귀의 떨림과 목의 울림을 시각화한 파장 십자가는 사람마다 수신 안테나와 송신 마이크가 함께 있음을 일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이웃과 세상은 물론 하나님과 파장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스스로 입을 다물며 결국 마음 문까지 잠가버린 사람도 많이 있다. 기도생활은 귀 기울이기와 말하기를 통한 삶의 파장이 만들어가는 십자가 체험이다. “여호와여 정직함을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시 17:1)
꽃잎 십자가 ‘ 꽃잎 십자가’는 독일 스투트가르트 성 게오르그(St.Georg)교회의 음악 연주 프로그램에 수록된 십자가이다. 한 달에 한 차례씩 주일 예배를 마친 후에 열리는 연주회인데,이를 ‘마티네’(Matinee) 즉 오전공연이라고 부른다. 꽃 잎 십자가는 성경책 갈피에 끼워둔 마른 꽃잎에서 문득 발견한 십자가 형상처럼 느껴진다. 마치 데칼코마니(decalcomanie) 작업을 통해 얻은 우연한 효과일 듯도 하다. 프랑스말로 ‘복사하다’와 ‘편집’의 합성어인 데칼코마니는 기대하지 않았던 우연의 효과가 주는 뜻밖의 기쁨이다. 꽃잎 십자가는 내 삶에 자연스럽게 복사된 신앙의 질서,대칭,조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 전에 여름수양회에서 꽃잎을 물들이며 성찬의 의미를 담으려고 한 적이 있다. 봉숭아 꽃과 푸른 잎을 흰 백반과 함께 곱게 찧어 서로 새끼손가락에 물들여 주면서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처럼 참 아름다운 흔적이었다. 성경은 꽃을 가리켜 화려하지만 순간적인 아름다움일 뿐이라고 묘사한다. 물론 꽃이 떨어짐으로써 열매라는 영원한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따르려는 ‘붉은 마음’(丹心)은 ‘붉은 흔적’과 함께 영원히 간직된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마 6:29)
스펙트럼 십자가 ‘스펙트럼 십자가’는 기독교 시각으로 정보를 수집해 뉴스를 배급하는 독일 개신교 통신사(Nachrichtenagentur)의 상징이다. 이 통신사는 주간 소식지인 ‘이데아 스펙트럼’을 통해 독일을 비롯한 세계 교회의 행사와 사건, 주장과 대안을 널리 알리는 것은 물론 이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담아내고 있다. 이처럼 기독교 언론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현상과 헝클어진 관계에 대해 성서적 조명과 신앙적 성찰로 시대적 징조를 밝혀내고 역사적 좌표를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다. 스펙트럼 십자가는 마치 고딕양식 예배당 후면에 있는 둥근 원형 장미창(薔薇窓)에 빛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모양을 단순화한 것처럼 보인다. 장미창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장미가 지혜의 꽃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대개 자연 채광으로 이뤄진 중세기 예배당은 깊은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의 흐름을 조절하는 명암의 미학을 갖추게 마련이다. 빛은 어둠을 순식간에 물리치지만 동시에 어둠은 빛을 서서히 물들이기도 한다. 빛 과 어둠의 특성을 잘 고려한 스펙트럼 십자가는 빛의 섬광과 파문, 어둠의 깊이와 무게를 동시에 보여준다. 성경에서 빛은 원초적인 진리 생명 지성 영지를 뜻하며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곧 ‘세상의 빛’이다. 스펙트럼 십자가는 복음의 언로와 매체로서 기독교 통신사의 소명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엡 3:4)
갈릴리 십자가 ‘ 갈릴리 십자가’는 유대인과 기독교인 사이의 친교공동체 네스 암밈(Nes Ammim)의 십자가다. 반유대주의를 극복하려는 네덜란드 의사 요한 필론과 그의 유대인 친구 숄로모 베첵,이스라엘 친구들이 1963년 국제적 연대조직인 네스 암밈을 설립했다. 갈 릴리 십자가는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와 하늘을 향한 이삭이 겹치면서 십자가를 구성하고 있다. 땅과 바다,하늘이 어울린 평화로운 풍경이 이 작은 십자가에 담겨 있다. 푸른 색 배경은 갈릴리 바다를 연상시킨다. 물고기와 이삭으로 단순하게 구성된 십자가는 마치 갈릴리의 어부와 농부가 더불어 사는 동네처럼 조화를 이룬다. 이삭과 물고기는 서로 다른 두 세계,곧 땅과 바다,구약과 신약,그리고 유대교와 기독교의 만남을 표현한다. 네 스 암밈은 히브리어로 ‘만민의 기호’란 의미이다. 바로 하나님의 거룩한 산,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는 새로운 시대가 온다. 만민의 깃발이 펄럭이게 될 것이다. 네스 암밈은 악코와 나하리야 사이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작은 마을이기도 하다. 반유대주의의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나치에 의해 저질러진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이다. 그들은 민족의 고난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망각은 유랑으로 인도하나 기억은 구속의 비밀이다.”(Baal Shem Tov) “그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사 11:10)
송병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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